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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여전히 숙제다. 주변에 '재수없게' 보이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지만 그것이 긍정적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부지기수다.

'예스'만 해야하는 데, 내일 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오늘의 '부침'을 각오해 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개인적으로 중저음의 목소리를 고대하지만, 결국 톤 업된 음색 역시 문제에 문제를 더하게 한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 건너서 이런 말을 듣는다. "널 위해 하는 말인데..." "누가 그러던데..." 식의 고언들이 그것이다. 이젠 그런 말에 발끈할 일도 없다. 고로 스스로 자중과 절제로 대사회적 끈을 더 단단히 조이고 있다.

왠만하면 웃는다. 속없이 웃는다. 욕을 먹어도 웃는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다. 내 모습에 어떤 인사가 "웃기냐!"고 정색을 한다. 술자리였고 상대방의 말에 즐겁게 집중한다는데, 돌아온 반응은 그렇다. 사실 그 정색의 일갈은 논리적이지 않다. 웃는 얼굴에 가래침 투척을 당한 꼴이다.

슬며시 자리를 일어나 그 황당 사건을 통해 화를 '컴다운' 시킨다. 그는 슈퍼 갑처럼 굴고, 나는 을이 돼 당하면서도 웃는다. 이게 사람 사는 꼴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산다. 미생이 사는 방식은 그렇다.

물론 그 인사가 공식적으로 날 싫어한다 말하지 않았지만 날 꽤나 꼴보기 싫어한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 관계를 돌이켜 보면 그 인사 내가 그를 알지 못할 때부터 날 관리의 대상으로 여겼던 듯 싶다. 관계의 왜곡은 그렇게 출발하고, 그 관계에 어긋난 오해를 차후 알게 되더라도 고정관념을 돌이키지 않는다. 원래 배운 사람들은 그렇다. 힘있는 자들은 반성이 없다. 그저 반성의 몫은 아랫 것들의 몫이다. 

돌아보면 한국에서 살기도 이렇게 버거운 데, 북조선에서 사람 살기 얼마나 어려웠으면 탈북을 했을 까. 그 정도는 아니니, 참아 넘기는 거다. 그들은 내 고통에 연연치 않는다. 그것이 논리적이지 않아도 말이다. 왜냐 한 입으로 두말한 꼴이니 '각' 빠지는 쪽을 겪기 싫어서 일게다.

물론 오해가 그들에겐 이해가 됐을테고, 그 외 문제를 찾으면서 스스로 이해에 논리를 더할테니 쉽게 깰 수 없는 벽을 세운다. 나는 그 벽에 철저히 갇힌 신세다. 영어의 몸은 자유가 박탈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해가 생기더라도 이해에 바탕해 관계를 풀어온 많은 인사들이 내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변의 오해를 잡아주고 내 스스로 나락앞에 서게 하는 곡해를 풀어준다. 여전히 꼬인 일은 많다. 더 많은 이야기를 통해 관계성 회복, 유지 발전에 더 분투하는 길 밖에 없다. 

친구들아, 나 좀 잘 뵈주라. 선후배님도요. 그동안 많이 (욕) 묵었다 아니가.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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