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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인이 “기자님이 비즈니스적인 감이 있다”며 “박근혜 가방 디자이너가 있는 데, 비즈니스 모델을 그려달라”고 찾아옴.


2. 당시 그 가방의 짝퉁이 강남에서 날개 돋힌 듯 팔렸고, 호미가 브랜드에서 자기 것도 아니면서 긍정도 부정도 않은 마케팅으로 매출이 쫙 오르고 있던 상황.


3. 내가 네이밍을 ‘프레지던트 박’이나 ‘프레지던트 이사벨’로 하라고 제안. 그런데 ‘박’은 너무 직접적이라 재미가 없고, 스토리텔링도 드러나니 세계 최초의 여자 대통령인 아르헨티나 이사벨 페론을 염두에 두고 ‘이사벨’ 제안. 페론은 너무 많이 알려져 신비감이 없고 실제로 현지에서는 이사벨로 불리니 그렇게 하자고 제안. 덤으로 제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품마다 개별 넘버링을 해 한정 수량 팔라고 제안. 물론 이후 연락은 없었음. 제안이 ‘시로도’ 수준일 수 있으니…


4.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그냥 유야무야 됐고 잊고 있었는 데… 갑자기 몇개월 후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 그 지인에게 내가 그 사람 찾아내면 기사 쓰겠다고 통보함. 내가 아는 정보가 없기에 그 쪽에서도 이름 알아내면 기사쓰셔도 뭐라 말하지 않겠다고 말함. 사실 내가 아는 것은 가방을 만든 것이 멀쩡한 회사가 아닌 그냥 개인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음.


5. 또다른 지인을 통해 가방에 대한 취재 시작. 박근혜 가방이 타조 특피인데, 특피라 하며 뱀가죽 악어가죽 타조 가죽을 일컫는 말로 공장을 확인해 디자이너 추적 시작!


6. 특피는 대개 시중가 300만~500만원 선의 가격대를 형성. 우피로된 명품 가방에 질린 여자들이 그 상위 제품으로 업그레이드를 원할 경우 찾는 물건이라고 함. 브랜드 특피는 대개 1500만원대에 가격이 형성, 금수저 아니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특피를 울며 겨자먹기로 들고 다닌다 함.


7. 공장 통해 그 인물을 찾았고, 그 인물이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였음 또한 취재를 통해 확인.


8. 첫 제보자에게 이름 확인 후 기사 출고.


9. 기사에 디자이너의 이름을 익명 처리 안하고 출고. 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으나 무리수 출고이긴 했음.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고영태로부터 전화가 왔고, 욕을 얼마나 하던지…. 기자 생활하면서 전화통으로 그렇게 욕을 먹어보기도 처음. 몇차례 통화 끝에 욕한 것 사과받고 디자이너 이름 역시 익명 처리해줌. 그런데 돌아보면 이름에 왜 그렇게 연연했을 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음. 사실 디자이너란 직업의 특성상 이름이 알려지는 게 낫다는 것이 상식이었음. 그 오랜 궁금증이 이번 사건과 연결되면서 이해됨.


10. 근데 이 후기를 왜 쓰냐하면, 당시 제안했던 이사벨 페론의 모습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 이사벨 역시 군사 쿠데타로 실각 후, 공금 횡령으로 8년이나 징역을 갔음. 물론 박근혜 대통령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 뭐라 딱히 말할 상황은 아닌 듯. 근데 내게 뭔가 예지력이 있었다 하는 생각에 약간 소름 돋음. 기자 때려치고 점쟁이를 하는 것이 낫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음. 하여간 시국이 수상하다보니 머리도 복잡하여 그냥 주절 주절….

 

과거 고영태 그분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081359541&code=940100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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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신나게 하려해도, 가당치 않음을 느낀다.

가당치 않은 일을 계속 하는 것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이제 블로그를 접는다. 

가당한 세상을 찾아, 가당한 일을 다시 시작할 때까지 쫑!

입이 있어도 굳이 말을 하지 않음이어라.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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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어떤 '뻥'을 하게 될까?

블로그에 올린 내 다짐은 이내 '뻥'이 되기 일쑤다. 지난 주를 돌아보고 새 주의 다짐을 정리해야할 시간.

지난 주 수많은 술자리서 들은 얘기 중, '천군만마'란 말이 있다. 제대로된 도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 역시 '뻥'쟁이의 농이 짙게 깔려 있음을 그제야 알았다.

...

 

군인 1천명이 1만 마리를 끌고 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고역이다. 1명이 10마리를 말을 끌고 다니면 이미 적과의 전쟁이라기 보다 말과의 전쟁이다.

현실성없는 얘기지만, 그 칭송의 대상이 됨은 중입감이다.

노동조합 일을 하게 됐다. 일부서 천군만마라며 결단에 대한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 외에 곱지않은 시선도 있을 수 있다.

결단은 모호하다. 선택은 여러 상황 변인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현실은 보여지는 그대로다. 바꿀 수도 바뀔 지도 않는다. 노조 사무국장!

천군만마! '뻥'이라 예단하지도, '고정관념'이라 폄훼하지도 않을란다.

천군만마는 숫자 싸움이 아니다. 강력한 군대를 의미한다. 보여지는 것에 머물지 말고,
그 잠재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 다짐이 결국 '뻥'이 될 지라도 다짐의 시효를 유지 발전 시키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말자. 누군가 욕을 하건 덕담을 남기던, 그래야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테니.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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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심해 (氣山心海)="기운은 산과 같이 굳세고, 마음은 바다같이 넓다"는 뜻이다. 운좋게 좌수서예가 석천 김병호 명인께서 일필휘지 써준게 있다.

근데 조선시대의 명필, 한호 한석봉이 기산심해와 같은 마음으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나와 관계없는 분이지만 이름이 같아서 남같지 않은 분이다. 애써 이것도 인연으로 엮고 싶은 것은 꿈을 지킬 '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냥 장식 정도로 생각해오던 이 액자의 글이 오늘따라 눈에 팍 박힌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 글을 마음에 새기고 미래로 그려 나가야겠다.

그럼 좌수서 깁병호 선생이 누구인지 한번 살펴보자. 2011년 관련 기사다.

[오른손 장애 극복 ‘왼손서예 명인’ 된 김병호]

ㆍ선천성 소아마비 딛고, 붓글씨로 시련 이겨내
ㆍ외동딸 잃고 절망과 恨,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세월은 촌부의 살을 말리고 뼈를 오그라뜨렸지만, 명인이 된 그의 필치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2008년 9월 ㈔대한명인문화예술교류회가 명인으로 추대한 서예가 김병호 선생(68)은 원체 가늘고 여린 외양 탓에 불면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괜한 걱정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부산 초량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가득한 서예 작품은 용이 제 하늘을 만난 듯 똬리 풀고 솟구치는 듯 했고, 호랑이가 밀림을 호령하듯 포효를 내뿜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좌청룡 우백호의 정기를 받고 있으니 칠순을 앞둔 서예 명인에게서 아우라가 엿보였다.

좌수서예 명인 김병호 선생이 부산 초량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개인 작업실에서 일필휘지로 ‘기산심해(氣山心海)’를 쓰고 있다. 이 글은 김병호 선생이 애착을 가진 4자성어로 “기운이 산과 같고 마음씀이 바다와 같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서예와의 만남
 
김 선생은 웃음을 달고 산다. 그러나 그의 웃음 속엔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 역경이 숨어 있다. 그는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아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손·발이 자유롭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내려진 지체장애 3급이라는 ‘천형’이 좌수서(왼손으로 붓글씨를 쓰는 사람) 명인이라는 ‘천운’을 선사한 셈이다. 하지만 서예 인생 60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김 선생은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었다. 서예는 내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희망을 되찾을 수 있게 한 유일한 힘”이라고 운을 뗐다. 서예가에게 있어 오른손 장애는 치명적이다. 자유롭지 않으니 왼손 서예를 익힐 수 밖에 없었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써야하는 서예의 특성상 좌수서로 이름을 올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다른 길은 없었다. 밖에 나가 뛰놀 수 없었던 어린 병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당시 서예와 한학 정도 밖에 없었던 것.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소아마비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그나마 어린 병호가 혼자 걷고 느리게 나마 세상을 개척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아들에게 손수 서예와 한학을 가르치며 미래를 열게 했다.
 
서예는 6살부터 시작했고, 천자문은 8살이 되던 해부터 그의 삶과 함께 했다. 또래들은 제 나이에 학교에 갔지만, 어린 병호는 이듬해가 돼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학교는 그에게 세상에서 겪어야 할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게만 만들었다. 초·중·고교로 이어지면서 시쳇말로 ‘왕따’의 대상이 됐던 그는 영남상고를 중도에 포기하면서 학교와의 인연을 접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그의 눈에 영화 간판이 들어왔다.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일이기에 극장 관계자가 손사래를 쳤지만, 오기가 발동해 끈덕지게 매달렸다. 당시는 영화 뿐만 아니라 당대 톱 스타들도 극장쇼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대도극장 등에서 대나무에 분필을 꽂아, 할리우드 스타며 국내 스타들의 얼굴을 판박이로 베껴내는 솜씨에 관계자들이 환호했다. 청년 김병호는 실력이 있으면, 장애를 보기보다 능력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시련을 예술혼으로 녹여내다
 
세상이 처음으로 달리 보이던 그 때 아내인 허두선씨(65)도 만났다. 여전히 손을 꼭잡고 길거리를 다니는 식을 줄 모르는 황혼의 사랑은, 처음 만났을 때의 초심과 다름이 없다. 그는 아내에 대해 “저의 예술 세계를 제일 잘 알아주는 친구다. 가난할 때도 하루 10여 시간씩 서예에 몰두하는 저에게 잔소리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칭찬에 입이 마르지 않았다. 결혼 후 한동안 멀리하던 서예도 다시 만났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부러울 게 없었던 그는 오래지 않아 현대미술창작전의 동양화·서예 부문 특선 등 각종 미술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하늘의 시샘은 그의 행복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일 게다. 김 선생은 “1997년 3월 27살의 꽃다운 딸을 잃었다”며 지갑 속에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딸의 사원증을 내보였다. 갑작스런 사고로 대기업에 다니던 딸이 유명을 달리했고,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더 이상 세상을 살 의미가 없어졌다고도 생각했다.
 
그 때 그는 어렵게 붓을 들었다. 꽃중의 꽃이라는 모란(목단화)을 그리며, 딸에 대한 진혼(鎭魂)의 염을 이어갔다. 그 작품 속에 유독 모란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속상함이 사라지더라”고 고백한다. 가슴 속 응어리가 작품으로 승화되면서 새로운 삶을 이어갈 용기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의 호에서 따온 석천체도 체계화 됐다. 서예 전문가들은 “석천체는 글씨가 마치 한마리 용처럼 꿈틀거리고, 흰구름과 먹구름이 교차하면서 운우가 내리는 듯 한 인상을 준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즉석 휘호를 써 줄 정도로 강단있는 필치”라고 설명한다.
 
김 선생은 최근 기분 좋은 평가를 또 하나 받았다. 세계 최초로 누진다초점렌즈를 개발한 안경렌즈 업체 ㈜에실로코리아가 김 선생의 장인 정신을 높이 평가해 장인후원캠페인의 후원 대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이 덕에 편안한 시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고통을 통해 예술을 농익혀 온 김 선생은 “누구나 뜻하지 않게 아픔을 겪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라며 묵향 가득한 미소를 던졌다.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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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경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예측케 한다.

아버지 계신 병원으로 향한 첫기차, 코 앞에서 놓쳤다. 네이버 기차 시간이 실제와 다르기는 했지만, 티머니와 개찰 터치 패드가 삑 소리를 내며 네차례나 발목을 잡았다.

짜증났다. 뒤차와의 간격이 15분 정도인데 150분 이상의 불쾌감이 온몸을 감쌌다. 어제 가려던 길에선 작은 다툼이 발길을 돌리게 했다.

양력 설에 본 토정비결은 대박이라는데 소소한 생활 속에선 독박의 기운이 스민다. 내딛는 걸음 걸음에 의미를 담는다. 시류 빗대 세상을 농단한 철학자라도 되는 폼새다.

음악이 울린다. 그 다음 차가 도착한다. 이 차는 스케줄에 따랄 뿐인데 난 거기에 개똥 잔뜩 묻은 나만의 철딱서니를 오버랩했다. 이 역시 마음 다스림의 문제인데, 굳이 비관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날이 포근하다. 휴일 기차 안엔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내 자리가 날 수도 있을 만큼 승객이 적다. 대체로 표정도 밝다. 이런 환경은 내 재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작은 일에 짜증이 날 수 있다. 기대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때 감정을 들볶아 짜증을 배가하면 내 하루는 스스로 가혹한 처벌에 내동댕이 쳐진다.

그런 일을 목도한다. 아~ 이를 어째! 할 수 없지, 15분 기다리자. 넌 그러니? 그래도 오늘 같이 가주면 고마운데, 정 내키지 않으면 집에서 쉬어. 모두 내 의지와 기대와 다른 것이지만 이해와 포용을 갖춘다면...

아마 한파에 날선 대지를 어루만지는 해살처럼 따스한 마음이 날 편안케하지 않을까. 또 배우고 자꾸 반성하는 하루다.

설을 맞기 전, 이 사람과 다퉜고 저 사람의 행동이 이해 안됐지만...그래서 불같이 화났지만 결국 그로인해 설날 기분도 다운됐다.

무에 그리 절박했을까. 그들로 인해 절박함을 채우려 하지 말고 스스로 간절함으로 오늘도 절절히...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하루인데!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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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되기 직전 있었던 일이다. 돌아보면 난 반성 하나는 기똥차게 잘 한다. 하지만 반성 이전의 실수도 잘 한다. 반성은 다시 그런 우를 저지르지 않기 위함인데, 언제나 반성을 해내고야 마는 이 놈의 생활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후 난 어머니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했던가. 그때 이렇게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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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조카 결혼식이 있었어요. 한동안 바빠서 병원에 형님 간병 중인 어머니늘 뵙지 못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랜만에 만났어요. 

그럭저럭 먹을만한 피로연 뷔페인데, 얼마 드시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옆의 이모에게 밥이나 한공기 가져다 달라더군요. 병원서 간병하느라 식욕을 잃으셨나 했죠. 

분주한 결혼식장서 서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고, 늦은 오후 시골에 잘 도착하셨나 전화했어요. 많은 말이 오갔고, 그 와중에 뷔페가 나왔어요.

어머니는 "손이 떨려서 접시에 음식 담기도 쉽지 않더라. 창피하기도 하고..."라 말하시는 거예요. 아차 싶더군요. 그래서 어머니의 음식 접시가 소박할 수 밖에 없었고, 허기를 채우려 공기 밥 한그릇을 찾았던 겁니다. 

어머니에게 전 무엇이었을까요. 불효자는 운다지만, 그거야 지 만족을 위한 거란 생각입니다. 또 어머니께 죄 하나를 더했습니다. 

곧 명절이네요. 어머니를 뵈면 따뜻한 밥 한그릇이나마 풍족하게 나눠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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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니는 형님의 병실을 옯기는 대이동을 벌인다고 했다. 그 일이 힘에 부치는 것이라 안쓰럽지만 내가 해드릴 게 없다. 집을 지키던 아버지까지 올라와 이삿짐을 나른다는 데, 어찌보면 나의 스탠스는 남과 다를 바 없다.

말로는 효자 코스프레를 반복하지만 결국 내 행동엔 변화가 없다. 이 망측함을 어찌하면 되풀이하지 않을 까.

고민이 커지는 하루다.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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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이란 말은 닭살이 돋는 말이다. 그런데 소소한 것, 지난 온 사람들이 반추하는 것이 나의 경험치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사안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최근 종편을 보다보니, 과거 내가 취재했던 기사들에 대한 설왕설래가 패널들 사이에 오갔다. 당시 TV조선 ‘대찬인생’이 그것이다. 내 귀를 자극한 것은 벌써 수년을 지났던 이서진 김정은 결별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벌써 만 6년 몇개월 전 기사로 2008년 11월 쯤으로 기억된다.

소문은 있었으되, 취재가 만만치 않았던 아이템이었다. 당시 톱스타였던 김정은과 이서진의 결별은 확정적 취재원이나 본인의 답이 없는 이상 쓰기 쉽지 않은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기사를 출고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한 확정적 취재원의 지속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고 전 김정은에게 '결별'에 대한 직접 취재가 있었고, 취재는 스스로 완벽했을 지라도 그녀의 최종 답을 기다리기 위해 첫 기사를 보도하기 이전 3번 정도 출고를 미뤘던 기사다. 결국 이 말은 이서진 측근을 통해 취재가 마무리 됐다는 것을 말한다. [취재 과정은 '미디어스' 칼럼 참고]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미루어 짐작한 이서진 모친이나 이서진의 직접 지인은 아니다. 스무고개 같지만 이들 역시 취재원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깜짝 놀랄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과거의 일을 회고하는 프로그램에서 이서진 김정은의 결별을 자기 시각이나 풍문대로 예단하는 통에 관련 당사자로서 속이 답답함을 지울 수 없었다. 짜깁기 수준의 확인되지 않은 당시의 풍문에 근거한 이야기만이 오갔다. 누구의 집안이 얼마나 세력있는 집안이라는 둥이란 이야기는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 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제대로 꿰차고 있지 못하는 듯도 했다.

이서진은 데뷔 초부터 ‘금융계 로열패밀리’라는 출생 배경으로 관심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 ‘다모’ ‘불새’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최근 예능을 통해서도 매력을 발산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김정은은 이미 톱스타였다. 이들이 몇년간 열애를 이어오면서 무수히 결혼 이야기가 오갔지만 거기에까지 골인하지 못한 것은 그놈의 '인기' 때문이다. 그 인기의 궤가 서로 상치돼 움직이면서 결정적 시기를 잡지 못한 탓이 적지 않다. 단순 인기를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인기로 인해 두 사람 스스로의 생각이 달라진 탓도 없지 않다

방송은 이서진에 대해 그의 인기를 방증하듯 끊임없이 염문설에 휘말렸다. 데뷔 이전 톱스타 심은하와의 스캔들부터 가수 이효리와의 열애설, 배우 김정은과의 공개 연애까지 있었다고 얘기했다. 다 보도된 것이다. 과연 이들 뿐이었을까. 결국 이런 새로운 팩트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의 적지 않은 분량을 채워야 하니 오해를 증폭하는 역할을 할 뿐이란 생각이다. 혹자 이럴 수 있다.

예능하자는 데 다큐로 바라본다는. 그러나 사람 이야기, 그것도 톱스타 등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황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술자리 송사 식의 발언들은 오해를 사실인양 치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출고 후 한차례의 수정도 거치지 않은 당시 기사를 첨부한다. 이 사안이 항의 전화가 없을 사안은 아니다. 회사 내부의 한 간부도 기사의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취재원을 공유할 수 없어, 당시 회사 내부에서도 그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다행히 기사 후 양측이 빨리 그 사실을 인정해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다.

다행이 두 사람은 이런 오해가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톱스타답게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스스로 톱스타인 이유로 보여주는 광폭 행보다.

■ 2008년 11월 22일자 보도(신문 기준)

이서진-김정은, 결별설 파문

환상의 커플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톱스타 커플로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탤런트 이서진·김정은이 최근 결별설에 휩싸였다.

결별설의 진앙지는 서울 강남의 뷰티숍이다. 최근 뷰티숍 관계자들로부터 두 사람의 이상기류를 감지할 만한 증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서진의 어머니가 두 사람이 연애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결혼은 안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효자인 이서진이 어머니의 뜻에 따라 김정은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다는 것이 결별설의 내용이다.

이서진과 김정은의 친가가 있는 서울 반포 서래마을에서 두 사람이 가끔 들르던 카페를 경영하는 A씨도 “예전에는 식당과 카페 등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으나 지난 9월 이후 두 사람을 잘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주변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두 사람 사이에서 냉각설이 흘러나오는 건 지난 7월 뉴욕 화보 촬영 이후다. 뉴욕 현지에서 쇼핑한 내역서가 문제가 됐다는 전언이다. 당시 두 사람은 꽤 많은 쇼핑을 했는데 대부분 김정은을 위한 선물이었고, 이 쇼핑 내역서를 본 이서진의 어머니가 발끈했다는 후문.

두 사람의 열애설 이후 ‘이서진이 김정은의 유명세 덕을 보고 있다’는 주변의 쑥덕거림도 이서진 집안을 불편하게 했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은이 1998년 MBC 드라마 ‘해바라기’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서진은 2003년 MBC 드라마 ‘다모’로 유명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지난 가을을 전후해서 김정은은 예비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이서진에게 토로했고, 그 말이 이서진 어머니에게 전해지면서 오해가 쌓였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이서진의 어머니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경비실에 편지만 전한 채 돌아서야 했다는 것이다.

한 제보자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데, 이서진이 김정은과 쉽게 결별하겠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서진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고, 혼자 남으신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자”라는 말로 대신했다.

MBC ‘종합병원’을 촬영 중인 김정은은 “촬영 때문에 만나는 횟수는 줄었지만, 연락은 계속하고 지낸다. 우리 사이는 변함이 없다”는 말로 결별설을 일축했다.

이서진의 소속사는 21일 오후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연예인은 “모두가 부러워 하는 연인 사이가 하루아침에 깨지겠냐”면서도 “두 사람의 교제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오는 추측이 아닌가 싶다”고 안타까워 했다.

■ 2008년 11월 22일 보도(인터넷기사 기준)

이서진-김정은, 어머니의 반대로 ‘결별’

‘환상의 커플’로 불리던 배우 이서진·김정은의 결별설이 결국 현실이 됐다.
 
이서진과 김정은 측은 지난 10월말을 전후하여 떠돌기 시작한 결별설에 대해 스포츠칸이 몇 차례에 걸쳐 끈질기게 확인을 요구했으나 “잘 지내고 있다”면서 부인해왔다. 그러나 스포츠칸 결별설(22일자 1면 보도) 보도가 알려진 21일밤 김정은이 “10월말 이서진 측으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았다”고 실토했다. 이로서 2년간에 걸친 이들의 사랑은 종지부를 찍었다.

김정은의 소속사측은 21일 밤까지 ‘결별설’에 대해 “사실 무근이다. 아직도 잘 만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김정은도 스포츠칸 기자에게 “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 모르겠다”면서 “드라마 촬영으로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매일 전화통화를 하면서 잘지내고 있다”고 말해왔다. 스포츠칸의 단독보도 이후 22일 소속사인 예당엔터테인먼트 측의 한 관계자는 “기사에 난 것처럼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이 맞다”며 “일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김정은이 현재 드라마 ‘종합병원2’를 촬영 중이어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서진의 소속사 측은 21일 오후부터 모든 연락을 끊어놓은 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정은측에서 결별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이서진쪽으로 돌리고 있지만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현재 두 사람의 결별원인은 본지가 22일자 1면을 통해 보도한 것처럼 이서진 어머니의 완강한 결혼반대로 보인다. 본지는 한 제보자의 증언을 토대로 “이서진의 어머니가 두 사람이 연애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결혼은 안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효자인 이서진이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의 뜻에 따라 김정은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다는 것이 결별설의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이서진과 김정은의 친가가 있는 서울 반포 서래마을에서 두 사람이 가끔 들르던 카페를 경영하는 A씨도 “예전에는 식당과 카페 등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으나 지난 9월 이후 두 사람을 볼 수 없다”고 이상기류를 확인해 줬다.
 
주변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긴 건 지난 7월 뉴욕 화보 촬영 이후다. 뉴욕 현지에서 쇼핑한 내역서가 문제가 됐다는 전언이다. 당시 두 사람은 수천만원 상당의 쇼핑을 했는데 대부분 김정은을 위한 선물이었고, 이서진을 위한 물건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쇼핑 내역서를 확인한 이서진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을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서진의 어머니와 김정은의 갈등은 이후 계속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이서진 어머니의 처사에 대한 불만을 이서진에게 토로했고, 그 말이 이서진 어머니에게 전해지면서 오해가 쌓였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이서진의 어머니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경비실에 편지만 전한 채 돌아서야 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의 열애설 이후 ‘이서진이 김정은의 유명세 덕을 보고 있다’는 주변의 쑥덕거림도 이서진 집안을 불편하게 했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은이 1998년 MBC 드라마 ‘해바라기’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서진은 2003년 MBC 드라마 ‘다모’로 유명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서진의 집안을 잘 아는 한 제보자는 “이서진의 평소 성격이 맺고 끊는게 확실하다. 어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사랑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결별 이유를 추측했다.
 
네티즌들은 22일 아침에 들려온 두 사람의 결별 소식에 “너무 보기 좋은 커플이었는데 아쉽다” 등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이서진의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결별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남녀가 헤어질 때 분명히 양쪽의 입장이 있을 텐데 한쪽의 이야기만 들을 수 없다”며 신중론을 펼치는 분위기다. 여하튼 많은 팬들의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던 연예가 공인커플의 결별 소식은 사랑과 결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  2008년11월25일 미디어스 칼럼

 이서진과 헤어진 김정은, 결별도 언론플레이?-[강석봉의 믿거나 말거나] 
 
‘환상의 커플’로 불리던 배우 이서진·김정은의 결별설이 결국 현실이 됐다. 김정은은 “지난달 29일 전화로 결별을 통보받았다”고 결별설을 확인하고 현재 느낌을 밝혔다. 이로써 두 사람의 2년간 사랑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결별을 일방 통보했다’고 알려진 이서진 측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매달린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눈물로 안쓰러움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 결별설에서 사실 확인까지

김정은·이서진의 결별설이 피어오른 것은, 연초 곧잘 목격되던 데이트 현장이 후반기들어 잦아들면서부터다. 최근 두 달간 방송된 이들의 열애 관련 프로그램들은 과거의 것을 반추해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지난 9월29일 SBS <김정은의 초콜릿>과 10월10일 MBC <섹션TV연예통신>, 11월18일 MBC <놀러와> 등이다. <초콜릿>에 출연한 ‘동방신기’가 이들의 일본 데이트를 목격했다는 주장은 동방신기의 일본 활동 시점이 6~7월이기에 두어 달 전의 이야기였고, <섹션TV연예통신>의 ‘두 사람의 권태기 화보 촬영’은 7~8월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것을 리마인드한 것이다. <놀러와>에서 김정은이 밝힌 ‘헬스클럽 데이트’는 1년이나 지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촬영 중에 있었던 일이다. 결국 현재는 없고 과거에 대한 추억만 실시간으로 전해지니, 결별설은 잦아들지 않았다. 여기에 이서진이 <태왕사신기> 커플인 박성웅·신은정의 10월18일 결혼식에 혼자 참석하면서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본격적으로 제보가 접해진 시점은 10월말께다. 강남 뷰티숍을 중심으로 이들의 결별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더해지며 결별설이 힘을 더했다. 10월 출고 예정으로 기사를 작성했지만, 김정은·이서진 측은 강한 부인으로 보충 취재를 하기로 잠정 결론… 그리고 3주가 지난 시점에서 ‘이서진·김정은 결별설’은 최종 아이템으로 확정됐다. 그리고 재차 확인 요청에 이서진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김정은은 여전히 부인하는 입장이었다.
 
# 결별의 악수를 선택된 눈물로 반전!

제보 사실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확인 취재됐고, 그 정황이 명확해 기사는 출고됐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언론 플레이는 빛을 발했다. 결별설을 부인한 당일, 특정 언론과 “결별사실 일방통보, 교통사고 당한 기분”이란 눈물의 인터뷰로 결별이란 위기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결별은 김정은으로부터 선택된 진실에 의해 새롭게 포장되기 시작했다. 이때 결별 배경으로 지적된 ‘이서진 모친과 김정은의 갈등’은 이서진의 모친에게 비난 여론이 이어지면서 마녀사냥식 보도를 양산했다. 그녀의 눈물은 이서진 모친의 발등을 찍었다.

네티즌들은 이서진 모친과의 갈등 원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서진 모친이 둘 사이를 반대했다면, 김정은이 그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백설공주’의 이야기처럼 이서진 모친은 독이 든 사과를 김정은에게 건넨 꼴이 됐고, 김정은은 그 사과의 유혹에 영원히 잠들게 된 이야기처럼….

사태가 예상과 달리 전개되자, 김정은 측은 “이서진 모친 탓이 아닌, 두 사람의 성격 차”로 결별 이유를 그제야 밝혔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이서진 모친께 김정은이 보냈다는 사과 편지는, 김정은 측에 의해 결혼예물을 상의하기 위한 편지로 둔갑했다. 22일 오후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 진행된 <김정은의 초콜릿> 녹화장에서 기자 인터뷰를 고사하던 김정은이 갑자기 “질문 2개만 받겠다”고 입장을 바꾼 이면엔 무엇이 있었을까. 팬들이 궁금해하는 상황보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인상이다.
 
# 결별 당사자보다 당황스런 이서진 모친!

김정은은 이날 <김정은의 초콜릿> 녹화 클로징 멘트에서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슬픈데 슬픈 척 못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라며 결별의 아픔을 밝혀 관객들의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해외에 머물고 있는 이서진 모친은 손놓고 네티즌의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이서진 모친이 지인에게 전화해 “내가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어왔을까! 이런 한탄의 이면에는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을 할 곳이 없다는 자괴감이 느껴진다.

두 사람의 결별은 이서진과 김정은의 몫이어야 하는 데도, 그 책임을 부모가 떠안게 됐다. 매체를 통해 눈물로 호소할 수 있는 김정은과 비난 여론에 대응할 방법이 없는 이서진 모친의 입장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톱스타 커플의 안타까운 결별이, 예상치 못한 피해자를 만들어 버렸다. 결별과 관련된 두 스타와 이서진 모친이 아픔을 빨리 극복하길 바랄 뿐이다.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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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위해 준비를 하기 보다 그냥 행복하게 살면 안될까. 오늘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얘기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여울 끝이라며 곧 행복한 삶에 골인할 것을 고대한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행복을 좇으면서 오늘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오늘은 언제나 내일에 저당잡혀 있고, 내일은 행복이나 꿈에 인질이 됐다.

가슴 아픈 것은 우리가 언제나 오늘을 산다는 것이고, 어제 꿨던 내일의 꿈은 무한반복으로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꼴, 정확하게 내 일상이 이렇다면 꾸는 꿈보다 작을 지라도 오늘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떨까.

따지고 보면 행복의 크기란 것이 지갑 내용물의 두께나 사는 집의 크기와 꼭 맞게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데, 너무 쉽게 망각한다. 이를 각성한다면 소소한 행복에 우리의 오늘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오늘 시골 사는 친구과 점심 약속이다. 그동안 이들과 행복에 대해 무수한 얘기를 나눴다. 그 역시 내일 꿈 얘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결과는 그 흔한 내일 얘기가 오늘까지도 무한반복 되고 있다. 이뤄지지 않는 행복은 어쩌면 행운인지 모른다.

행운이 꽃말인 네잎클로버는 행복이 꽃말인 세잎클로버를 무수히 짓밟고 헤짚은 후에야 잡을 수 있다. 행운은 행복을 해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모진 놈이다. 역으로 행운은 무수한 행복 속에 숨어있다. 행복하다보면 행운도 오는 것이다.
오늘의 행복, 어디에 있을까. 이렇게 페북에 글 쓰는 이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던가. 그저 오늘 살아감이 행복일게다.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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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다. 그렇잖아도 정신없는 출근길, 선배로부터 보이스톡이다. 이 선배는 아들 조카들과 함께 20여일 인도 일주 여행을 하고 있다.

"어디셔요. 사진 좀 그만 올려요. 여행으로 정신없을텐데..."

중국 베이징이란다. 이제 돌아오나 보다. 부럽다. 달랑 일본 2박3일 여행에도 포만감이 가득한데, 일군의 인도유람단은 아마 배가 터지고도 남겠단 생각이다.

"돈은 많이 안들었나. 너무 오지를 다니는 것 아닌가요?"

인도하면 신라 때 혜초 스님이 처음 그 길을 한국인 사상 최초로 열었다. 그는 끝내 귀국치 못하고(?) 중국서 열반에 들었다....

그 옛날에 두달로 다녀온 길을 난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선배는 그들을 스스로 가득 담아 귀국길이란다. 그러니 부러울 밖에.

굳이 돈 얘기를 꺼낸 것은 나의 용기없음을 위장하기 위한 기만술이다. 그런데 돌아온 알은 1인당 200만원 꼴이란다. 항공료 100만원을 제외하면 100만원이고. 공항 면세 비용이 포함된 것이라니...나쁘지 않은 지출로 보인다.

여행 프로세스에 패배를 인정한 나는, 이내 세세한 부분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남는 얘기는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최근 내 여행의 결심 때 스스로 깨달은 단어다. 

그래 맞다. 인생은 선택이고, 선택은 용기란 모티브에 의해 결정된다. 돈은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시간은 부족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상황은 여의치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용기는 자리잡고 있다. 

역발산기개세처럼 거창하진 않더라도 내가 품고 있는 용기란 녀석을 얼르고 뺨쳐서 잘 키우고 볼일이다.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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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적 시간 속 연속적 불면, 한정된 감정 속 과잉된 소모, 안정적 현실 속 변곡된 미래, 활기찬 관계 속 제한적 만남, 환상적 상상 속 지지한 약속, 해맑은 웃음 속 싸늘한 반응, 즐거운 기대 속 암울한 오늘, 들어쥔 로또 속 비리한 배당, 찌릿한 첫잔 속 잉태한 숙취, 미소띈 셀카 속 숨겨진 진실, 맘먹은 효행 속 욕먹을 난행, 친절한 쓰탐 속 탐욕된 촉각, 친절한 상담 속 소소한 잇속, 포만할 첫술 속 쌓여갈 변비, 가랑비 도보 속 깔깔한 기침, 화통한 결단 속 남겨진 회한, 연소된 담배 속 줄어들 생명, 관리한 건강 속 활성된 산소, 맛깔진 밥상 속 남겨질 잔반, 내지른 카드 속 초과된 결재, 포옹한 자식 속 오버랩 웬수, 귀여운 야옹 속 귀찮은 털들, 시원한 원경 속 갑갑한 노안, 쌉싸래 커피 속 차단된 꿀잠, 짜릿한 맥주 속 빈번한 소변, 후루룩 국수 속 슈루룩 혈당, 캄캄한 어둠 속 또렷한 정신, 쏟아낸 대화 속 허탈한 심경, 상승된 ...감정 속 나뒹굴 후회, 걸어온 족적 속 반성할 추억, 지나온 어제 속 아쉬운 행동, 당당한 선언 속 당황할 주변, 주먹쥔 도전 속 평가할 감자, 보내진 카톡 속 여전한 1번, 맞잡은 악수 속 돌이올 악수, 격정적 첫발 속 걱정할 막발, 살가운 그들 속 살벌한 그놈, 귀요미 친구 속 노여운 반응, 행복한 고민 속 불편한 심기, 얄상한 사랑 속 얄미운 당신, 상쾌한 아침 속 졸리운 하품, 절절한 충고 속 증폭된 고충, 고매한 성품 속 결국엔 허풍, 닿을듯 행운 속 꼬리문 불운, 으라차 보물 속 내꺼는 고물, 다퍼준 부모 속 뻔뻔한 자식, 미친듯 미수 속 3일뒤 대출, 반가운 까치 속 실제론 까칠, 망중한 여유 속 황망한 멍질, 유쾌한 조크 속 우라질 쫑코, 시원한 방귀 속 시벌헐 냄새, 감탄할 칭찬 속 등겨눈 비수, 화려한 수사 속 더러운 감찰, 약자앞 갑질 속 강자뒤 납짝...계속 업뎃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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