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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적이다. 

내가 보수였던 시기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밖에 없다. 정치적인 진보와 보수를 따지기 전에, 현실의 가치를 유일한 과제로 엮어 생활의 모든 면을 꽁꽁 묶어 낸 것을 보수라고 한다면, 당시 난 보수였다.

어린 것이 뭘 알겠는가. 시키는 대로 하면 '장땡'인 줄 아는 시기였다.

접촉지역(휴전선 접경지역)인 철원에 살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강요를 당연시 했다. 수요일이면 '안보조회'란 것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리는 반별 깃발을 든 기수 뒤를 따라 열병식을 했다. 요즘 북한 관련 자료 화면에서 나오는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뱅그르 돌아 교장 선생님이 있는 연단을 지날 때, "받들어 총"이라는 구호가 나오면 기수는 깃발을 하늘 높이 들어 90도 각도로 꺾었다. "충성"! 우리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그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아버지 역시 군인이었으니, 그 살풍경 안보조회에 대한 부담감 역시 없었던 듯 하다.

중학교를 갔다. 소풍도 아닌 데, 인근 산에 학생들을 풀어 놓았다. 삐라를 주어 오란다. 삐라는 북에서 날려보낸 불온전단을 이른다. 중학생이 되어 선 그나마 눈치란 것이 생겼다. 시골 아이들은 칡이며, 더덕을 구별 할 줄 알았고, 일부 강심장들은 뱀까지 맨손으로 잡아냈다. 우리들은 삐라를 주어 오라는 선생님 말을 뒤로 하고, 더덕을 캤고, 칡을 찾아냈으며 온갖 나물까지 땄다. 심지어 한 놈은 그 무섭다는 살모사를 잡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우리의 노획물을 선생님이 인터셉트를 했다. 

시킨 일을 안한 우리의 과실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의 노력을 꿀밤 몇대와 잔소리로 뺏어간 선생님의 행동은 '만행'이었다. 구축된 헤게모니에 대한 반발, 결국 나는 진보의 길을 걸은 셈이다.

고등학교를 갔다. 이 학교 지역 명문이다. 입학도 하기 전에 교련복을 입고 인근 예비군훈련장으로 우릴 집합시켰다. 일주일간 이어진 집체교육은 군인의 아들이었던(아버지는 1980년 전역하셨다) 나에게까지 반발심을 갖게 했다. 

이 행동은 대학 입학 후 문무대 입소 거부 싸움과 2학년 당시 전방입소 거부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나의 이런 행동은 집안 내 돌출 행동임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1953년 한국전쟁 당시 군에 입대했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아버지는 사춘기를 넘자 마자 반공 게릴라 부대인 구월산 유격대 활동을 했다. 가족이 모두 피난하고 나서 군에 입대한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병의 계급을 달고 화랑무공훈장을 탔다.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백마부대의 일원으로 파병 1호배에 올랐다. 작은 외삼촌도 월남 파병군에 이름을 올렸다. 1960년와 70년대에 걸려 있었던 일이다.

1980년대 사우디 근로자 파병 명단에 큰 외삼촌이 이름을 올렸다. 그 이후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난 두번이나 읍내에 마련된 참배소를 찾았다. 이후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이 전국은 물론 세계를 울렸다. 당시 작은 이모를 방송을 통해 찾았다. 

참 사설이 길었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넘긴 국제시장의 시대적 사건과 우리 집안의 가계도는 밀접히 연관돼 있다. 여전히 아버지와 각을 세우고 정치 얘기를 하지만, 아버지의 삶까지, 우리 가족의 모든 삶까지 '보수 골통의 꼬봉'으로 여긴 한 유명 영화평론가의 발언이 속상하다. 

이 세상은 아주 복잡한 구조에 엮어 있다. 세상을 판별하기 위해, 그 구조를 단순화할 필요는 있지만, 그 삶을 송두리째 입 안 파찰음으로 폄훼해선 안될 성 싶다. 그 평론가의 평가를 나 역시 단순화해 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부도덕한 정권을 비판한다는 명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된다. 정색을 하고 비판을 하느니, 이런 사람도 있음을 드러내며, 한 마디 말이라도 스스로 정제하는 노력을 그 분이나 나 역시 경주해야하지 않을 까 생각한다.

자신이 본 세상을 스스로 규정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스스로 인테리겐차라 여긴다면 그 칼날을 어찌 써야할 지, 칼집에서 끄집어 내기 이전에 한번쯤 골똘히 생각했으면 한다.

나름 진보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그 삶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다 해도, 보수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윗세대의 삶을 함부로 내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뒤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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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냥... 2015.01.21 0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뻘글 같은데... 앞뒤도 없고.. 나는 이렇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아 네..

  2. 영화평론가 2015.01.21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보라고 자칭하면서 찌라시 신문 보시나.

    그 영화평론가의 토나온다는 평은 영화나. 영화에나왔던 인물들에 대한 평이 아니라

    그 영화를 대하는 찌라시 신문에 대한 이야기로 알고 있네요.

  3. 뒤따리오 2015.01.21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것 역시 토나온다는 일방통행식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의 전파 수단이 구례부터 영화도 그 하나란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토'라는 말로 개념화하는 것은 문제 일 수 있다는 생각이고요. 님께서 의견을 주신 것도 틀린 바는 아니지만, 그것 역시 비아냥이 섞어 있어서 아쉽기는 하네요. 조직과 개인의 싸움에서 사람이 조직을 비난하는 도구로 비아냥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서 비아냥을 전제한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블로그라는 것이 최대한 개인의 생각을 담는 것이기에, 비판은 받아 들이지만 그 의견에 동조는 못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을 바랍니다. 하지만 대상이 개인일 때 조금만 표현에 조종해 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졸필을 읽어주신 성의에 대해 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댓글에 대한 의견 글은 바로 위에 댓글을 남겨 주신 분에 대한 의견도 함께 담겨 있음을 밝힙니다.